얼마전 페이스북에서 제출하고 나서 10년이 지나서야 출간된 논문이 화제가 된 걸 봤다. 수학분야가 워낙에 논문심사 프로세스가 오래 걸린다고 하지만 좀 심하다 했는데,  물론 그정도는 아니지만 작업을 시작한지 4년만에 출간된 논문이다. http://www.jneb.org/article/PIIS1499404611004647/abstract

박사과정 공부를 2003년에 시작해서 2009년에 졸업했으니, 만 6년을 죠지아대학에 있었다. 그 6년동안 3명의 지도교수를 모셨지만, 수업조교를 제외하고는 지도교수로부터 한번도 재정지원을 받아보지 못한 불우한 학생이었다. 지리학과에서 외부펀딩을 끌어오는 능력있는 교수가 많지 않은 탓도 있고, 돌아보면 참 나 스스로도 영리하지 못했던 것 같다.  쌓아둔 돈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돈떨어지면 다 관두고 귀국을 했겠지만, 근근히 여기저기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학위를 마쳤으니, 나 스스로도 신기하다.

오히려 다양한 여러 분야의 교수들과 일하였던 것이 좋은 경험이 되었다. 농경제학자, 인문지리학자, 기후학자를 망라하는 많은 분들과 일하다가, 마지막으로 코넬대학에서 학위를 하고 죠지아대학 식품영양학과로 부임하신 한국인 교수님과 1년 남짓 같이 일할 기회가 있었다. 그게 2008년 여름부터 2009년 봄까지였고 바로 논문제출을 했으니, 만 3년만에 결과가 출간된 것이다.

사실 그쯤되니, 구체적인 내용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ㅎㅎ. 기억을 되돌려보자면, 플로리다주립대가 있는 도시로 유명한 플로리다 탈라하시 (Tallahassee, FL.)시를 대상으로 ‘저소득층 식료품지원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식료품점들의 공간적 분포와 센서스상의 사회경제지표분포를 비교분석하는 것이 내가 했던 일이다. 이론적 배경과 정성적인 분석은 식품영양학과 연구진과 탈라하시시의 공무원들이 맡았다. 자동차 등 교통수단이 부족한 저소득층의 집중주거지역에 비교해서 해당 식료품점들이 원거리에 분포하고 있어서,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으로 분석결과가 나온것으로 기억한다. 정책적인 시사점과 개선방안들이 제안되었다.

UGA의 Press release (Healthy foods missing from stores in low-income black neighborhoods, UGA study finds)를 보면 조금 더 자세한 참고가 되겠다.

Keyword: University of Georgia, Leon County, FL., Tallahassee, Food security, Journal of Nutrition Education and Behavior, Supplemental Nutrition Assistance Program, food deserts, income, rur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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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뜰에 그릴을 두고 일주일이 멀다하고 핏빛육즙을 흘리는 스테이크를 구워대던 우리집에서 고기섭취량을 확 줄여버린지 이제 반년이 조금 지났다. 우선 내가 안먹기 시작했고, 스테이크

요리를 전담하던 내가 안먹으니 식구들 모두 고기 구경하기가 힘들어졌다. 동네 유기농마켓에서 가끔 기름기 없는 안심을 사다가 아이들에게 구워먹이고 우리도 조금씩 귀퉁이 조각을 먹기도 하지만, 그런 일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두부나 두유 종류를 거의 손대지 않는 아이들 때문에 식단구성에 애를 먹고 있지만,  아내도 점차적으로 만족하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여전히 생선종류나 계란, 우유, 요거트 종류 등은 식단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다만, 덜먹는 대신 가급적이면 유기농 종류로 구입하여 사용하고 있다.

이걸 어찌 거부할 수 있단 말이오!워낙에 맥주를 즐기는 탓에 저녁에 퇴근하고 식구들 잠든 후, 냉장고 뒤져서 소시지 한조각에 맥주 한잔의 호사를 자주 즐기곤 했다. 다음날 아침의 불편한 아랫배는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비용으로 치부했다. 그러던 중 운동부족 때문인지, 식사 후에 속이 불편하고 토할 것같은 증세가 몇주간 계속되었다. 사무실에 홀로 앉아서 일하는 직업적인 특성 때문에 심한 경우에는, 아침 출근해서 저녁 퇴근까지 화장실, 강의실 출입을 제외하고는 건물밖에 나갈 일이 전혀 없는 날이 많았다. 그래서 그러려니 하다가도 증세가 심해지니, 속이 불편할 때마다 직전에 무엇을 먹었는지 무엇을 했는지 되짚어보게 되었다. 그때 발견한 것이, 예상밖에도 맥주가 아닌, 동물성 단백질이었다. 맥주와 먹었던 소시지, 육포, 간식으로 먹었던 버터 듬뿍 들어간 빵들, 접시가득 바베큐와 스테이크, 등등. 그래서 시작했다. 채식주의자가 되겠다고 선언하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해물류는 가장 좋아하는 음식들이고, 간혹 숯불냄새 풍기는 미국남부식 바베큐의 유혹에 넘어가기는 하지만, 고기를 덜 먹어보자고 작정한거다.

놀랍게도 효과는 금새 나타났다. 채식이라고 할 수는 없는 소, 돼지, 닭고기 금식조치후 약 1주일만에, 상습적이던 아침설사와 식사후 불편한 속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아내에게 고기 안먹겠다고 부탁한 후, 매번 나물반찬만드느라 아내가 고생이긴 하지만, 남편건강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못하겠는가 ㅎㅎ.  그렇게 시작한 채식위주 식단이 이제 반년이 조금 넘었다.

거의 20년 피던 담배를 끊을 때도 그랬지만, 기대되는 몸의 변화를 예상하고 자주 확인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식단을 바꾸고 나서, 아내와 함께 혹은 혼자서라도 채식에 관련한 책이나 다큐멘터리물들을 자주 보곤 한다. 비슷한 경험을 하였고,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간접적으로나마 경험을 공유하면 필요한 정보도 얻고, 궁금한 점에 대한 해답을 찾게 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던 중 읽은 책인 ‘Eating Animals’ by Jonathan Safran Foer이다. 한국에서도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나와있다.

영어로 읽어서 다행이다. 비위약한 내가 한글로 읽었으면 중도에 포기했을, 비위생적 비윤리적인 공장식 축산업, 도축업 현장의 생생한 묘사가 채식을 위한 충격요법으로 작용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공장식 축산업이 안고 있는 환경의 문제, 윤리의 문제, 건강의 문제, 사회비용의 문제 등에 대한 세세한 지적들은 ‘사람이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한 불편하지만 날것 그대로인 진실을 독자들에게 떠안긴다. 그리고, 각자의 선택을 묻는다.

회식도 없고, 외식기회도 상대적으로 적은 미국에서 채식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많은 식당들이 채식메뉴를 기본적으로 한두개씩은 갖추고 있어서, 여러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할때도 불편함이 없다. 그런 면에서 비교해 보자면, 한국에서 채식주의자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어려울까 짐작이 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포기할 일은 아니다. 내가 무슨 종교에 귀의한 것도 아니고, 수도사나 승려로 살기로 서약한 것도 아닌 바에야, 가끔 참을 수 없는 유혹에 넘어갈 수도 있다. 어느날 저녁에 맥주와 소시지의 유혹에 넘어가더라도, 내일 지구가 멸망하는 건 아니다. 다음날 1시간 운동해주면 된다. 지레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의 건강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 지구환경을 위해,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자신의 생활습관을 조금 바꿔보는 노력은 그 자체로도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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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는 수업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하다하다 안되서 돈을 받아서 (물론 개인적으로 유용한 건 아니다) 물의를 일으킨 교수가 있었는데, 알바 뛰느라고 학과행사에 참석하지 못한 학생에게 불이익을 주는 문제가 오마이뉴스 인터뷰 기사로 실렸다.

내가 현직교수라서 변명조로 하자면 참 많은 말을 할 수 있다. "그래도 세번이나 기회를 주었는데, 학과활동을 위해 노력은 해야하는 거 아닌가?" "학생 개개인의 사정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잘못이나, 현재의 교수학생비율 상황에서는 불가피하다." 등등등. 이제 교직생활 시작한지 1학기 지났다. 게다가 한국도 아닌 미국에서다. 이런 나한테 "당신이 우리 사정을 어찌 알어?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말을 말어."라고 한다면...

그래도 말할거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을 하라고. 학우에게, 가족에게, 학과교수에게, 총장에게, 당당하게 나 이러저러해서 힘들다고 말을 해야한다고... 한국사회 팍팍하다. 안다. 잘난 사람들 강연다니면서, TV 나와서, 자기는 자기의 꿈을 위해 열심히 했노라고, 잠을 4시간 이상 자본적이 없다고, "열심히 살면 나처럼 성공할 수 있다"고 떠들어 댄다. 심지어 대통령이 그러고 다닌다. 심지가 뒤틀린 내가 듣기에는 "네가 열심히 안하니 그모양 그꼴이다. 똑바로 살아라."로 들린다. 개나 줘버려야 한다. 그런 소리.

미국사회에서 교수하면서 느끼는 것중에 학생들과 부딪히면서 깨닫는 것들이 몇가지 있다. 일부 명문대학생을 제외한 평균적인 미국대학생의 학업수준이 상상이하로 낮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교육소비자로서 당당하게 (많은 경우 뻔뻔하고 집요하게) 교수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이다. 시험을 앞두고는 몇몇 학생이 사무실로 찾아와 몇시간씩 개인교습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과유불금, 오히려 얄미워서 도움을 꺼리게 되는 경우도 없지 않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학생들이 수업내용이나 기타 도움이 필요해서 교수를 찾는 경우, 대부분의 교수들은 (적어도 나는) 기꺼이 그들을 돕고자 한다.  나도 대학원생 시절, 다음 학기 장학금이 없어서 난감하던 시절, 눈 딱감고 얼굴에 철판깔고 잘 알지도 못하는 (하지만, 외부프로젝트를 잘 따온다고 소문난) 교수를 찾아가서, 말 그대로 (직역임)  "나 장학금 필요한데, 너 돈 있냐?" 라고 물어봐서 1년치 장학금을 구한 적이 있다.

믿기지 않을 지 모르지만, 교수들은 학생들을 모른다! 아니 피상적으로는 '미친 등록금과 물가 때문에 알바를 전전하면서, 취직을 스펙쌓느라 등골 휘는 불쌍한 88만원 세대'를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학교 우리학과 3학년, 무슨무슨 수업을 나한테 들어서 무슨 학점을 받았던, 학과모임에서 어떤 노래를 참 맛깔나게 불렀던, 그런데 왜인지 학과답사에 참석하지 않았던, 김 머시기 학생을 알지 못한다.

식상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나는 아직 사람 하나하나가 각자 가진 개성과 가치를 믿는다. 그 개성이 내 개인적인 성격과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사람을 나쁘다 혹은 모자라다고 평가해서는 안된다고 믿는다. 결국에는, 상대방 각각의 특수한 상황과 개성을 '알고' 거기에 걸맞는 조언과 도움을 주는 것이 교육에 몸담고 있는 사람의 의무일 것이다.

요는 '알아야 한다'라는 데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보면 모르냐? 교수나 되어서, 그걸 어떻게 학생이 꼬치꼬치 이야기해야 안다는 거냐?"라고 하지 말라. 모른다. 그리고 당당하게, 차라리 모르는게 낫다고 생각한다. 외모, 인적사항, 성적표상에 나온거 가지고 지레짐작해서 안다고 내 맘대로 평가하는 것보다, 그냥 모르는게 낫다는 거다. 사람을 안다는 거, 그리 쉬운 거 아니다. 게다가 그렇게 쉬워서도 안된다. 서로 대화하고 관계를 맺어가야 진정으로 상대방을 아는 것이다.

문을 두드려야 한다. 전화를 걸어야 하고, 이메일을 써야 한다. 가끔은 바빠서 과제를 늦게 낸다는 핑계일 수 있고, 가끔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장례식에 가느라 시험에 결석한다는 거짓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오고 간 대화의 길이만큼 서로를 진정으로 알아 가는 것이다. 나는 매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그렇게 이해하고 소통하는 몇명의 학생들을 가질 수 있는 학기가 되기를 기도한다. 그럼으로 그들이 졸업하고 사회에 나간 후에도, 그들을 대학이라는 상점에 잠깐 들러서 어떤 물건을 사간 소비자가 아니라, 같은 분야 같은 전공을 같이 공부하고 세상을 비슷한 눈으로 바라보며 동행하는 동반자로 기억하고 싶은 것이다.

"1등해도 장학금 막는 교수... 악이 받칩니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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