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뜰에 그릴을 두고 일주일이 멀다하고 핏빛육즙을 흘리는 스테이크를 구워대던 우리집에서 고기섭취량을 확 줄여버린지 이제 반년이 조금 지났다. 우선 내가 안먹기 시작했고, 스테이크
요리를 전담하던 내가 안먹으니 식구들 모두 고기 구경하기가 힘들어졌다. 동네 유기농마켓에서 가끔 기름기 없는 안심을 사다가 아이들에게 구워먹이고 우리도 조금씩 귀퉁이 조각을 먹기도 하지만, 그런 일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두부나 두유 종류를 거의 손대지 않는 아이들 때문에 식단구성에 애를 먹고 있지만, 아내도 점차적으로 만족하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여전히 생선종류나 계란, 우유, 요거트 종류 등은 식단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다만, 덜먹는 대신 가급적이면 유기농 종류로 구입하여 사용하고 있다.워낙에 맥주를 즐기는 탓에 저녁에 퇴근하고 식구들 잠든 후, 냉장고 뒤져서 소시지 한조각에 맥주 한잔의 호사를 자주 즐기곤 했다. 다음날 아침의 불편한 아랫배는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비용으로 치부했다. 그러던 중 운동부족 때문인지, 식사 후에 속이 불편하고 토할 것같은 증세가 몇주간 계속되었다. 사무실에 홀로 앉아서 일하는 직업적인 특성 때문에 심한 경우에는, 아침 출근해서 저녁 퇴근까지 화장실, 강의실 출입을 제외하고는 건물밖에 나갈 일이 전혀 없는 날이 많았다. 그래서 그러려니 하다가도 증세가 심해지니, 속이 불편할 때마다 직전에 무엇을 먹었는지 무엇을 했는지 되짚어보게 되었다. 그때 발견한 것이, 예상밖에도 맥주가 아닌, 동물성 단백질이었다. 맥주와 먹었던 소시지, 육포, 간식으로 먹었던 버터 듬뿍 들어간 빵들, 접시가득 바베큐와 스테이크, 등등. 그래서 시작했다. 채식주의자가 되겠다고 선언하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해물류는 가장 좋아하는 음식들이고, 간혹 숯불냄새 풍기는 미국남부식 바베큐의 유혹에 넘어가기는 하지만, 고기를 덜 먹어보자고 작정한거다.
놀랍게도 효과는 금새 나타났다. 채식이라고 할 수는 없는 소, 돼지, 닭고기 금식조치후 약 1주일만에, 상습적이던 아침설사와 식사후 불편한 속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아내에게 고기 안먹겠다고 부탁한 후, 매번 나물반찬만드느라 아내가 고생이긴 하지만, 남편건강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못하겠는가 ㅎㅎ. 그렇게 시작한 채식위주 식단이 이제 반년이 조금 넘었다.
거의 20년 피던 담배를 끊을 때도 그랬지만, 기대되는 몸의 변화를 예상하고 자주 확인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식단을 바꾸고 나서, 아내와 함께 혹은 혼자서라도 채식에 관련한 책이나 다큐멘터리물들을 자주 보곤 한다. 비슷한 경험을 하였고,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간접적으로나마 경험을 공유하면 필요한 정보도 얻고, 궁금한 점에 대한 해답을 찾게 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던 중 읽은 책인 ‘Eating Animals’ by Jonathan Safran Foer이다. 한국에서도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나와있다.
영어로 읽어서 다행이다. 비위약한 내가 한글로 읽었으면 중도에 포기했을, 비위생적 비윤리적인 공장식 축산업, 도축업 현장의 생생한 묘사가 채식을 위한 충격요법으로 작용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공장식 축산업이 안고 있는 환경의 문제, 윤리의 문제, 건강의 문제, 사회비용의 문제 등에 대한 세세한 지적들은 ‘사람이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한 불편하지만 날것 그대로인 진실을 독자들에게 떠안긴다. 그리고, 각자의 선택을 묻는다.
회식도 없고, 외식기회도 상대적으로 적은 미국에서 채식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많은 식당들이 채식메뉴를 기본적으로 한두개씩은 갖추고 있어서, 여러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할때도 불편함이 없다. 그런 면에서 비교해 보자면, 한국에서 채식주의자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어려울까 짐작이 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포기할 일은 아니다. 내가 무슨 종교에 귀의한 것도 아니고, 수도사나 승려로 살기로 서약한 것도 아닌 바에야, 가끔 참을 수 없는 유혹에 넘어갈 수도 있다. 어느날 저녁에 맥주와 소시지의 유혹에 넘어가더라도, 내일 지구가 멸망하는 건 아니다. 다음날 1시간 운동해주면 된다. 지레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의 건강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 지구환경을 위해,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자신의 생활습관을 조금 바꿔보는 노력은 그 자체로도 소중하다.